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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미술에 관하여

앙리 마티스의 관하여

by 수집남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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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앙리 마티스라는 화가를 아시나요? 아마도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면 생소한 이름일 텐데요. 하지만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바로 패브릭 포스터나 엽서 같은 굿즈 상품으로도 제작되기 때문이죠. 또한 인테리어 소품샵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사람들은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요? 또 어떻게 탄생된 기법일까요? 궁금하시다면 저의 포스팅을 끝까지 읽어주세요! 

다만 주의하실 점은 제가 알려드리는 정보 중 일부는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만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먼저 앙리 마티스의 생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는 1869. 12. 31. 출생  - 1954. 11. 3. 사망을 했습니다.
출생지는 프랑스 노르르 카토 칸브레지이며, 본명은 앙리 에밀 브누아 마티스(Henri Emile Benoit Matisse)입니다. 

마티스는 처음 법률을 수학하여 재판행정담당 서기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첫출발은 미술과는 동떨어진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러 화가들을 보면 수학자, 과학자, 천문학자등 미술의 분야는 여러 다른 분야들과 연관성이 있다는 부분에서는 마티스의 작품세계에 철저하고 계산적인 작업을 하는 작품세계에는 연결성이 있어 보입니다. 1889~1890년 처음으로 데생, 회화에 흥미를 가진 앙리 마티스는, 1892년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가 1895년 에콜 드 보자르의 귀스타브 모로의 교실에서 화가 루오와 서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1896년 살롱에 첫 출품을 하였습니다. 1898년에 스승 모로가 사망하자 다음 해에 아카데미를 떠나 파리의 아카데미 카리에르에 다니며, 드렝과 알게 되고, 그의 소개로 블라맹크와도 교제하였습니다. 또 그 전후로 신인상주의에 접근, 1904년 볼라르의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1905년의 여름을 드렝과 프랑스 남부 지중해 부근에서 보내고 그 영향으로 함께 포비즘에 도달하게 된다(『콜리우르의 열린 창문』 1905, 뉴욕, 존 헤이 휘트니 소장 등). 다음 해 거트루드 스타인 집에서 그 시대에도 거장이었던 피카소와 만난 게 됩니다. 그해에 알제리, 다음 해엔 이탈리아를 여행을 하며 여러 나라의 풍경 및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1908년 『Note d’un Peintre』 (화가의 노트) 를 발표. 그해, 모스크바의 대수집가 시추킨에게 『후식: 붉은색의 하모니』(에르미타주 미술관)등을 매도. 1911년에는 그의 초대로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1909년 파리 근교 이시 레 물리노에 옮깁니다. 1911~1912년에 모로코를 여행하는데, 그때부터 여러 가지 공간표현의 실험, 장식적 요소의 대담한 사용을 시도하게 됩니다. 

1916년부터 겨울은 니스에서, 여름은 파리에서 보내는 일이 많아지고, 『오달리스크』의 주제를 즐겨 택한다. 1932년 미국 메리온 소재 '반즈재단'의 벽화 『댄스II』를 완성함(반즈 재단미술관). 이후 평면화와 단순화의 시도(『장미빛의 나부』 1935, 볼티모어 미술관 등)를 거쳐, 1940년대의 대실내의 연작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빨간 대실내』 1948, 파리 국립현대미술관람 등).

1941년 대수술을 받고, 1943~1948년 남프랑스의 니스에 정주, 절지화(切紙畵)에 전념하여, 작품집 『재즈』를 출판(1947). 1948~1951년, 건축의 설계, 벽화, 스테인드 글라스 등 모두 자신의 구상에 의한 로제르 드 방스 성당을 완성했다. 일찍이 조각과 판화에도 손댄 외에 말라르메 시집의 삽화(1931) 및 그래픽 작품도 많습니다.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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